20221017 [경향신문] 방송 비정규직 눈물 외면하는 정부 방송사들···‘무늬만 프리랜서’ 착취 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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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10-18 10:06 조회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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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산하 방송사 KTV·아리랑TV·국악방송
10명 중 4명 ‘무늬만 프리랜서’···작가는 100%
정규직 3분의1 임금으로 휴가·수당 없이 착취
류호정 의원 “실태조사와 실질적 해결책 필요”
“대한민국 최고의 정책 알림이!” 정부 운영 정책방송 KTV의 슬로건 아래 방송작가 A씨는 부지런히 일했다. 실시간으로 정책 관련 소식을 알리는 생방송 프로그램 부서였다. 아나운서가 보는 프롬프터도 내려주고, 자막도 송출하는 등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다 했다.” 생방송 특성상 방송이 나가는 동안은 자리를 지켜야 했고, 카메라가 꺼지면 다음 생방송을 준비했다. 근무시간은 하루 최소 7~8시간에서 많으면 10시간. 주말 근무나 야근도 잦았다.
A씨는 공무원 신분인 PD의 지시를 받고 일했다. 사무실에 정해진 자리도 있었다. 근무시간도 방송 일정에 따라 결정됐다. 그런데도 KTV는 그를 ‘직원’이 아니라고 했다. 직원처럼 일했지만 서류상으로는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프리랜서였기 때문이다. 휴가나 야근 수당 같은 것들은 당연히 없었고, 임금은 월급이 아니라 프로그램 ‘건당’으로 지급됐다. 연휴가 낀 달에는 수입이 140만원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다. “충격을 받았어요. KTV에 다니느라 세종시에서 자취했는데 생활비 감당하기도 빠듯했어요. 일은 직원처럼 하는데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낮은 처우를 견디다 못해 그는 일을 그만뒀다.
정부 산하 방송들마저도 10명 중 4명을 프리랜서로 고용하는 등 방송 비정규직의 노동인권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방송업계 특성상 정직원과 같은 일을 하는 작가·PD·아나운서·조연출 등을 프리랜서로 계약하면서 직접 고용에 따르는 비용·책임을 피하는 것이다. 방송 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은 2020년 CJB청주방송 이재학 PD의 죽음, MBC 비정규직 아나운서·프리랜서 소송 등을 거치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정부가 오히려 앞장서서 노동 착취를 자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0명 중 4명이 프리랜서···방송작가는 100%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비지상파 방송 3사(KTV, 아리랑TV, 국악방송)에서 받은 ‘프리랜서 인력 운영 현황’을 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3사 모두 40% 이상의 인력을 프리랜서로 사용하고 있었다.
KTV는 전체 인력 350명의 50%인 174명을 비정규직으로 쓰고 있었다. 프리랜서가 49%, 기간제가 1%다. 정규직은 공무원 33%, 공무직 17%로 나타났다. 직군별로 보면 방송작가(48명), 편집(10명), 기타 방송무대직(29명), 아나운서(4명)는 100% 전원 프리랜서다. 방송제작PD는 57%(58명 중 33명)가 프리랜서로 근무하고 있었다.
아리랑TV는 전체 405명 중 46%(188명)가 비정규직이었다. 프리랜서가 42%, 계약직이 4%다. 아리랑TV도 작가 83명과 아나운서 12명 전원을 프리랜서로 쓰고 있었다. PD는 93명 중 69%인 65명이 프리랜서 신분이었다. 국악방송도 123명 중 48%(60명)가 비정규직이며 이 중 프리랜서가 45%, 계약직·파견직이 3%였다. 작가(27명), 연출지원(8명), 촬영(3명), 음향·조명(2명) 편집(1명)이 전원 프리랜서였으며 PD 27명 중 8명(프리랜서 7명, 계약직 1명)이 비정규직이었다.
방송사들은 비용 절감과 책임회피를 위해 이 같은 ‘무늬만 프리랜서’ 계약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현장 특성상 프리랜서 작가나 PD도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며 지시·감독을 받지만 처우는 훨씬 열악하다. 2020년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조사를 보면 방송사 프리랜서 임금은 정규직의 24.7%에 그쳤다. 특히 10명 중 7명이 여성일 정도로 여성 비율이 높은데, 작가 전원이 여성일 때 보수가 월평균 165만원에 그치는 등 성별 불평등이 심각했다.
법원 판례도, 직접 한 약속도 어기는 정부
방송사들의 이 같은 고용 형태는 법원 판례와도 배치된다. 지난 7월14일 서울행정법원은 MBC가 ‘뉴스투데이’ 프리랜서 방송작가 2명을 부당해고했다고 판단했다. 프리랜서 방송작가가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첫 판결로, 재판부는 이들이 프로그램 제작을 목표로 MBC의 지시·감독을 받으며 일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MBC가 계약서에 ‘갑은 을에 대한 안전 배려 의무를 다해야 하며, 기타 을의 생명, 신체, 건강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규정한 점을 들어 “이는 사용자(방송사)와 피용자(작가) 간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 부수적 의무로, 위임관계라면 존재할 수 없는 조항”이라며 “작가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매우 유력한 사정”이라고 판시했다.
이 판단에 비춰보면 문체부 산하 방송3사의 프리랜서들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문체부 산하 방송3사도 위탁계약서에 MBC처럼 “(회사는)작업 안전상 위해요소 발견이 예상되는 경우 스태프에 대한 안전 배려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기타 스태프의 생명, 신체, 건강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정부 기관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적극적으로 ‘무늬만 프리랜서’를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체부는 2018년 12월 “방송제작인력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문체부의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서부터 제작진과 원칙적으로 개별 근로계약을 적용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정부가 스스로 한 약속을 어겨가면서까지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쓰고 있다.
문체부가 이 같은 상황을 사실상 조장했다는 의견도 있다. 2019년 6월 문체부는 ‘방송분야 표준계약서 사용지침’을 발표하며 “방송프로그램 제작스태프 표준계약서 3종(근로/하도급/업무위탁)중 적절한 표준계약서를 준용해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계는 이 지침이 프리랜서 위탁계약을 사실상 각사의 자율에 맡기는 ‘면죄부’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류 의원은 “방송사 내 인력 운영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와 개선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프리랜서 직군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검토해 자발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며 “문체부는 근로계약을 회피하게 하는 ‘방송분야 표준계약서 사용지침’을 폐기하고, 방송 스태프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