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70명 노동자로’ 시정지시 받은 KBS, 이행 결과 ‘행정직 9명’
지상파 방송작가 근로계약 껍데기 이행 ‘노동부 적극 검토해야’
KBS 방송작가로 고용보장 근로계약 ‘0명’
MBC 노동자 인정 ‘뉴스외전’ 작가에 연락도 안해

방송작가 70명을 ‘무늬만 프리랜서’로 위법하게 사용해왔다는 고용노동부 판단을 받은 KBS가 시정지시 이행 결과 9명에 대해서만 고용을 보장하는 근로계약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9명의 업무도 방송작가가 아닌 행정직으로 바꿨다. 공영방송사가 방송작가의 업무에 노동자성을 인정한 노동부 근로감독 취지를 사실상 거슬렀다는 지적과 함께 노동부의 적극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동부에 따르면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3사는 10일 방송작가 근로계약 체결 시정지시 이행 결과를 노동부에 통보했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해 12월30일 지상파3사 특별근로감독 결과 ‘프리랜서 신분’인 방송작가 152명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며 근로계약하라는 시정지시를 내렸다. 작가들이 실제로는 ‘노동자’로 일하니 사측이 노동법 위반 상황을 해결하라는 취지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작가 152명 중 절반 가까운 70명이 KBS에서 일했다. KBS는 당시 ‘노동부 판단을 존중한다.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SBS에선 49명, MBC에선 33명이 노동자로 인정 받았다.

그러나 KBS의 시정지시 이행 결과, KBS가 방송작가 업무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맺게 된 인원은 0명이다. 취재에 따르면 KBS는 최근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70명 중에서도 2년 이상 근무한 9명만 무기계약 채용했다. KBS는 이들의 직무도 행정직(일반직)으로 전환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인 ‘방송작가친구들’은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서울노동청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인 ‘방송작가친구들’은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서울노동청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KBS는 기존의 방송작가 업무를 프리랜서 형태로 남겨두고 ‘실제 프리랜서처럼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프리랜서 근무형태에 걸맞도록 방송작가의 업무 내용과 지시·협업, 방송제작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은 이에 “KBS가 방송작가와 행정직 무기계약을 맺는 등 형식적인 이행 결과만 노동부에 제출하고, ‘방송작가 직군은 프리랜서’라는 점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KBS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작가 중 2년 미만 일한 31명에 대해서는 지난 8~9일 단기계약을 체결했다. KBS는 이들에 대해 총 근무 기간(프리랜서 기간 포함) 2년까지만 계약을 종료한다는 방침이다. 기간제법상 노동자를 2년 이상 채용할 경우 직접고용 의무를 지는 것을 회피하려는 조치로 읽힌다. 이들은 KBS의 ‘이행조치’로 오히려 수개월 안에 직장을 잃을 처지에 놓인 셈이다. 31명 중 3명은 서브작가, 28명은 취재작가(막내작가)다.

KBS가 방송작가들을 배속할 직군을 따로 신설한 점에도 비판이 나온다. KBS는 이들 31명을 기존 방송제작 직군에 배치하지 않고 ‘방송지원직’을 신설해 새 취업규칙을 적용했는데, 방송작가가 방송사 지시를 따라 PD나 기자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제작에 참여해온 업무 양태와 어긋날 뿐 아니라 또다른 차별 근거로 활용될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방송작가유니온
▲ⓒ방송작가유니온

김한별 지부장은 “기존 제작부서와 직군에 편입시키는 방법이 분명히 있는데도 새 직군과 취업규칙을 만든 것은 기존 제작스태프와 차이를 두고 싶어서라 본다”며 “KBS의 이행 방향을 살펴보면 근로감독을 통해 밝혀진 ‘방송작가는 프리랜서가 아니다’라는 점에 각성하고 기존의 방식을 바꾸는 게 아니라 과거의 방식을 공고히 하려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의 급여는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할 당시와 크게 차이가 없다. 취재에 따르면 KBS는 2년차 취재작가에게 월 209만여원의 기본급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여기에 교통비와 식대 등을 더해도 프리랜서로 일할 당시 급여와 비슷한 규모다.

KBS는 방송작가들에게 프리랜서 또는 근로계약 중 한 가지를 택하도록 해, 일부 작가는 프리랜서 계약을 유지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감독 와중 자·타의로 회사를 떠난 16명에 대해서는 연락을 취하거나 계약을 맺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KBS는 노동자성 인정 대상은 70명이라면서도 시정지시 대상은 현재 회사에 남아 있는 54명이라고 주장해왔다. KBS는 지난달 방송작가 간담회 자리에서 작가들에게 ‘회사를 떠났는데 노동자성 인정 대상에 포함된 이들은 근로계약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방송작가유니온과 권리찾기유니온은 지난해 12월22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MBC 뉴스외전 작가 2명을 비롯한 ‘방송노동자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방송작가유니온과 권리찾기유니온은 지난해 12월22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MBC 뉴스외전 작가 2명을 비롯한 ‘방송노동자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MBC의 경우, 노동자로 인정 받고도 결과 발표 이후 계약이 종료된 방송작가들에 대해 직접고용 연락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MBC는 지난해 말 ‘뉴스외전’ 방송작가들에게 계약종료 일정을 일방 통보했는데, MBC는 노동부의 시정지시(근로계약) 대상에 이들이 포함된 사실을 확인하고도 현재까지 관련해 접촉하지 않았다. MBC의 시정지시 위반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노동부 엄중조치 필요 목소리…언론노동자 역할도


노동부가 방송3사의 이행 여부를 살피며 시정지시 취지를 충족하는지 적극 살펴 후속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변 노동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용우 변호사는 “방송사들은 시정지시를 따랐다고 주장하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엉뚱한 업무로 전환하는 등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조치들”이라며 “노동부가 부당전보 소지를 검토하고 방송사가 시정요구에 걸맞은 방향으로 이행하도록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노동부가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공백이 된 방송작가 직군에서 또다시 프리랜서 논란이 재생산될 것”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방송사의 제대로 된 시정지시 이행을 촉구할 언론노조의 역할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언론노조도 사내 수십년 간 방치되던 방송작가의 불법적 고용 문제를 손대지 못한 부분을 돌아볼 일이다. 근로감독 결과를 받고도 회사가 꼼수를 쓰는 상황에서 시정지시를 제대로 관철하도록 언론노조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BS와 MBC, SBS 3사는 방송작가 직접고용 방침을 묻는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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