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어고은 기자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말 지상파 3사에서 일하는 시사교양·보도 분야 152명의 방송작가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고 방송 3사에 근로계약을 체결하라고 시정지시를 내렸다. 최근 방송 3사 모두 기한 연장을 요청하면서 근로계약 체결 시정기한이 2월 중순까지로 연장됐다. 그런데 근로감독 이후 2년 미만 근무자의 경우 2년만 채우고 일터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근로감독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사들이 ‘방송작가=프리랜서’라는 기본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프리랜서계약 체결 이후 근로실질을 어떻게,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KBS 2년 이상은 무기계약직, 2년 미만은 기간제 방침

1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노동부는 이날까지 방송 3사에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방송작가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라고 시정지시를 내렸지만 방송 3사의 연장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기한을 연장했다. KBS는 공사 특성상 근로계약 체결시 신원조회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정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지난달 30일 지상파 3사 시사교양·보도 분야 방송작가 노동자성을 가리는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363명 중 152명(KBS 70명·MBC 33명·SBS 49명)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했다. KBS와 MBC는 노동자로 인정받은 작가 가운데 각각 54명, 26명이 시정지시 대상이 됐다. 감독기간 동안 일을 그만둬 지난달 30일 기준 재직자가 아닌 경우에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KBS는 2년 이상 근무자는 무기계약직으로, 2년 미만 근무자는 기간제로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단 개인이 원하면 프리랜서 계약을 유지할 수 있다. KBS는 지난 13일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작가들에게 근로계약 체결을 희망하는지, 아니면 프리랜서 계약 유지를 원하는지 지난 14일 자정까지 답변을 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메일에 첨부된 ‘직접고용 대상자 후속절차 안내’를 보면 근로계약 체결을 원하면 17일까지 관련 서류를 인사기획부에 제출하고, 프리랜서 계약 유지를 원하면 18일까지 ‘자유계약 유지의사 확인서’를 작성해 제출해 달라고 돼 있다. KBS는 지난 5일 ‘직접고용 대상자 전체 간담회’를 진행한 뒤 6일부터 순차적으로 개별면담을 했다.

문제는 2년 미만 근무자의 경우 노동자로 인정받았는데 오히려 일터를 떠나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KBS 방침대로라면 2년 이상 근무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하지만 2년 미만 근무자는 기간제로 2년 이상을 근속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KBS 방송작가 A씨는 지난달 말 계약 종료 이후 이달 계약을 연장하면서 ‘6개월짜리’ 계약서를 쓰게 된다고 구두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8월부터 일한 A씨는 6개월 계약을 연장해도 전체 일한 기간이 1년 미만이기 때문에 퇴직금도 받지 못하게 된다. A씨는 “인사담당자가 12월 말 계약 종료로 재계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회사 배려로 계약 연장을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며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서를 쓰기 때문에 6월까지만 일하고 나가라고 하니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실제로 근로계약 체결이 곧 정규직 채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간제 채용을 시정지시 불이행으로 간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KBS에 시정지시를 내린 서울지방노동청 관계자는 “기존 근로조건이 저하돼선 안 되고, 작가들의 의사를 존중해 법적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게 시정지시의 두 가지 원칙”이라며 “이러한 원칙을 적용해 시정지시를 이행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실시한 CJB청주방송의 경우 프리랜서 계약을 원한 일부 방송작가 외에는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청주지청 관계자는 “방송작가 5명 중 2명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나머지(PD 3명·MD 4명 포함)는 전부 정규직으로 채용됐다”고 밝혔다.

MBC·SBS도 취업규칙 작성·임금체계 조율 중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지부장 김한별)와 KBS에 따르면 KBS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작가들의 경우 새로운 취업규칙을 작성해 적용하고, 프리랜서로 남는 작가들은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지 않도록 ‘근로실질’을 변경할 계획이다. 지난 14일 지부와 면담 자리에서 KBS 인사담당자는 “취업규칙 초안을 작성 중이고 작성완료 후 작가들에게 취업규칙동의서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서부지청과 서울남부지청의 설명을 종합하면 MBC와 SBS도 현재 취업규칙 작성·임금체계 조율 같은 시정지시 이행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근로감독이 방송작가들의 실질적인 근로조건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취업규칙 동의절차를 거칠 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업규칙 동의절차는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있는 경우 그 노조가,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없는 경우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김한별 지부장은 “KBS측은 언론노조 KBS본부의 동의를 구하면 된다는 입장인데 해당 노조에는 방송작가가 포함돼 있지 않아 제대로 입장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프리랜서 계약을 유지하는 작가들의 근로실질을 어떻게 변경할지도 과제로 남는다. 시사교양·보도 분야 방송제작 특성상 팀으로 협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근로실질 변경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김한별 지부장은 “근로감독 이후에도 방송사들은 기본적으로 방송작가가 프리랜서고 이번 근로감독 결과가 예외적인 경우라고 보고 있다”며 “출퇴근만 없앤다거나 변칙적 방법으로 ‘무늬만 프리랜서’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