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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래서 노조 가입했다 열한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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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2-15 12:30 조회2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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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래서 노조 가입했다 열한 번째 이야기>


이번 ‘나 이래서 노조 가입했다’ 열한 번째 이야기는

기존 카드뉴스 형식 말고 다르게 준비해보았습니다.


이번에 사연 주신 작가님께서는

이전에 쓰셨던 책 안의 한 꼭지를 저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생각과 경험들이 모여 

노조에 가입하게 된 것 같다고 하시면서요. 

전해주신 내용을 아래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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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드디어 꿈꾸던 집을 지었다.


택지 한 개를 두 가구가 쪼개서 지은 일종의 ‘땅콩집’이긴했지만 그래도 일생의 꿈이었던지라 많이 고민하고 공을 들였다. 온갖 빚을 끌어다 1년여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었는지 ‘예쁜 단독주택’으로 매체에 여기저기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모 지상파 방송사의 집 소개 프로그램까지 나가게 되었다. 집주인들이 직접 집을 소개하고 함께 둘러보는 형식이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소위 ‘아침 와이드 방송’이라고 하는데, 맛집 소개라든지 살림 아이디어 등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일종의 버라이어티 쇼다. 


촬영 당일. 방송국 스태프 10여 명이 왔는데 남자는 딱 2명, 방송국 소속 아나운서와 카메라 감독뿐이었다. 나머지 스태프들은 모두 여자, 그것도 젊은 여자들이었다. 프리랜스 작가들, 외주업체 소속이거나 그나마 파견직일 가능성도 있는 PD들, 작은 카메라를 잡는 VJ들, AD들…. 거의 대부분 20대 초중반으로 막 대학을 졸업했거나 경력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게 뻔해 보였다.


이유는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그들이 가장 싼 노동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아침 와이드 프로그램은 제작 주체가 방송국이 아니다. 외주 제작사, 그것도 재하청이 아니면 다행이다. 최근의 아침 프로그램들은 각 요일별로 여러 업체를 선정해서 경쟁시키듯 돌린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주5일 방송에서 업체를 6개 선정하는 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단다. 그런 식이라면 업체들 내부 사정도 빤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별과 고통은 항상 그렇듯 가장 약한 자들을 향한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 구조로 만들어진 임금 피라미드는 당연히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열악해진다. 자리 잡은 중견 방송작가들이 등장하는 ‘직업 소개’ 같은 글들을 보면, 자신이 막내 때 80만 원을 받으며 버텼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아직도 종종 나온다. 


계단의 가장 밑은 여전히 처참한데, 아직도 조금씩 더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어찌된 일인지 계단은 위로 넓어지는 일 없이 아래로 깊어지기만 한다.


모자를 눌러쓰고 열심히 촬영 장비를 챙기고 있는 막내 스태프들을 보고 있자니, ‘전태일의 누이들’이 생각났다. 70년대 평화시장, 최저임금은커녕 휴일도 없이 매일 미싱을 돌려대지만 풀빵 한 조각 사 먹기 어려웠던 산업 역군들. 세월은 흘러 2015년이 되었건만 뭐가 얼마나 달라진 걸까. 


가혹한 제작 환경에서 밤샘 편집에 동원되고, 다음 날 하루 잠을 자고, 다음 제작 일정을 위해 간신히 몸을 일으켜 다시 또 스튜디오로 향하는 초년 방송 스태프들. 알량한 월급. 해봐야 120, 150, 180…. 연차 따라 계단처럼 만들어진 ‘그들만의 합의’. 외주업체나 파견업체가 밥값, 교통비를 챙겨줄 리는 없으니 원룸 월세 내고 나면 손에 몇 푼이나 쥐어질까.


아마도 그 남자 카메라 감독은 막내들 세 명 월급을 합친 정도의 돈을 받겠지. 아니, 만약 외주사 대표를 겸하고 있기라도 하다면 분기마다 차를 바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헛웃음이 나오는 상상에 씁쓸하다. 방송국 다니다 나가서 외주 제작사 하나 잘 차리면 ‘분기마다 차를 바꿀 수 있다’는 건 모 방송국 PD 선배가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막내들이 외주사의 임금 체불에 운다는 사실을 끝내 이야기 하지 않았다.


“먼저 갑니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몇 시간에 걸친 촬영이 끝나고, 아마도 유일하게 ‘지상파 정규직’일 남자 아나운서가 자신의 수입산 SUV 차량을 타고 유유히 떠났다. 짐을 챙긴 스태프들이 9인승 국산 SUV에 간신히 구겨 타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욕이 치받쳤다. 나쁜놈들, 하청을 줄 때 주더라도 차량 지원이나 좀 해 주지.


다시 전태일이 떠올랐다. 그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지 40년이 지났는데 평화시장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다. 형태도 모양도 구성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이제는 오히려 뻔뻔하게 ‘전태일의 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평화시장의 ‘사장님들’은 말한다.


“기회를 주잖아.”


열심히 하면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아니냐는 말이, 그녀들이 만드는 방송 프로그램에도 나온다. 하지만 그놈의 기회는 이제 하청업체, 외주업체들의 개수만큼 조각조각 쪼개져 있고, 그 조각은 너무 작아서 막내들이 있는 계단까지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구조는 점점 더 알아보기 어렵게, 교묘히 모양을 바꾸고 있다.


120만 원짜리 막내작가로 시작해 이제 계단의 중간 이상까지 올라왔다고 안도하던 어느 날, 나는 그렇게 갑자기 10여 년 전 나의 모습들과 만났다. 안도하며, 때론 자부심마저 가졌던 일상이 부끄러웠다.


따로 글을 쓸까 하다가... 제가 얼마전에 냈던 책의 한 꼭지를 가져왔습니다. 꼭 방송작가 만은 아닌, 방송환경 전체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우리들'을 생각하며 썼던 글인데, 노조를 함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의 단초가 결국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 아니었나 싶어서요. 더 이상 일상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만든 노조를 더 견실하고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함께 어깨를 걸고, 가능성의 틈새를 넓히고 모두에게 기회가 열리는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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